![]() ![]() 껄끄러운 타국 일본에서 브레이크에 도달한 "마이너스"의 메니지먼트 한국출신의 5인조, 눈이 번쩍 떠질만한 가창력과 댄스 퍼포먼스로, 아시아 각국에서는 금새 탑스타가 되었지만, 일본에서만은 그럴 수 없었다. 거점을 세워가며 브레이크까지 4년, 그 걸어온 길을 관계자와 본인들의 취재를 통해 쫓아본다. 인터뷰 두각을 나타내는 5명이 느끼는 일본에서의 당혹감, 반응, 기쁨, 그리고 이후 ~~~~~~~~~~~~~~~~~~~~~~~~~~~~~~~~~~~~~~~~~~~~~~~~~~~~~~ ![]() 준수 「일본에서는 안돼」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1987년 1월 1일생. B형. 신장 178센티. 맴버중 가장 빠른 12살에 소속사에 들어가 연습생으로 6년을 지냈다. 웃는 방법과 말하는 방법이 특이해, 동방신기 팬들도 공언하는 세키네 츠토무의 성대모사의 대상. 「최근에는 티비의 프로듀서분들이 저에게 재미있는 부분을 원하셔서 부담되요~(웃음)」라며 곤란해하는 기색. 리더인 윤호의 말에 따르자면 「그는 무드메이커.」 자유롭게 구사하는 고음의 보컬로, "들려주는 부분"의 긴부분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댄스를 외우는 것이 가장빠르고, 맴버들도 인정하고 있다. 라이브의 MC와 음악방송에서는 일본의 개그나 성대모사, 만담을 보여주기도하고 웃음을 담당하고 있다. 미묘하게 웃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코 주위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인. 버라이어티와의 상성이 좋아서 그를 시작으로 그룹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처음 1~2년은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고, 정말로 분한 생각도 들었어요. 음악 차트에서 20위에 들어가서 겨우 10위가 되고 그러면서 데일리 차트에서 1위를 했지만 위클리에서는 1위를 할 수 없었어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꼭 1위를 차지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죠. 일본의 차트라는 것이 한국에서도 뉴스가 되곤했거든요. 그런 것도 있고「한국에서는 팔리지만, 일본에서는 무리였다.」라는 말을 듣는게 싫었어요. 그래서 1위가 되었을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그 때에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토호신기"보다 "동방신기"라는 존재 쪽이 컸었던거같아요. 그런 점들이 점점 그 둘은 스타일이 다르다라고 양분할수 있게 되었죠. 터닝 포인트는 (07년의) 무도관라이브. 『明日は来るから』라는 곡 부를 때, 관객분들이 서프라이즈로 팬라이트를 함께 밝혀주는 것을 보고 「우리들은 이렇게 응원받고 있구나」라고 진심으로 감동했어요. 그래서 마음가짐이 긍정적으로 변한거 같습니다. ~~~~~~~~~~~~~~~~~~~~~~~~~~~~~~~~~~~~~~~~~~~~~~~~~~~~~~ ![]() 유천 『스마스마』같은 방송을 언젠가 가지고 싶습니다. 1986년 6월 4일생. 0형. 신장 180센티. 피아노가 특기, 스스로 작사 작곡한 곡이 최신앨범에도 수록되어있다. 「책임감이 강하고 객관적. 분위기를 가장 잘 읽는다」라는 스탭의 평. 리더인 윤호의 말에 따르면 「『함께 곡을 만들자』라던가 여러가지 제안을 해주는 타입」. 취재도중 「일본 라면 최고. 최근에는 미소라면이 좋아요. 멋져요!」라고 열변. 초중고교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영어가 능숙. 치유계의 웃는 얼굴로부터는 상상할 수 없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구사하는 랩은, 그룹 고유의 특색중 하나가 되어있다. 라이브나 시상식에서는 가끔 통곡을 하기도 하고 눈물이 많지만 주위의 촌평에서 「남자답다」,「귀엽지만 남자로 느껴진다」라고하는 대조적인 매력은 일본여성의 마음을 크게 흔들 것같은 예감이 든다. 처음에 일본에 왔을 때는 여행을 한다는 기분으로 비행기 안에서도 두근두근했었어요. 몇개나 되는 CD를 낼꺼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요, PC도 안가져오고 핸드폰도 로밍도 하지 않고 왔어요. 도착하고나서야 점점 현실을 알게 되었는데요(웃음). 일본어를 모두 못했기 때문에, 기분을 전달할 수 도 없고 매일 「한국에 돌아가고싶어」라고 생각했죠 조금씩 일본에 매력을 느낀거는 라이브가 계기였어요. 일본의 라이브는 노래로 관객과 대화하는 느낌이었거든요 한국에서처럼 엄청나게 커다란 공연장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즐겁지만 일본에서처럼 노래를 조용히 들어주는 분위기도 좋구나..하구요. 관객의 층이 다양한 것도 한국과 다르거든요. 그럼에도 「우리들은 일본에서 알려지고 있어」라는 실감을 좀처럼 얻을 수 없었던 건 괴로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건 언젠가 5명이 함께 하는 방송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는거예요. 『SMAPxSMAP』같은 토크가 재미있고, 연주도 하고, 새로운 곡이 만들면 들려드리기도 하고... 그럼 방송을 5명이 함께 할수 있다면 좋을것같아요. ~~~~~~~~~~~~~~~~~~~~~~~~~~~~~~~~~~~~~~~~~~~~~~~~~~~~~~ ![]() 재중 2년전, 「더이상은 안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어요. 1986년 1월 26일생. 0형. 신장 178센티. 일본어 가사는 일본어로 생각한다. 자신의 결점은 「눈앞의 것에 흠뻑빠져서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관기를 잘 못하는것」이라고 말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맴버들의 위해서 요리를 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의 윤활유가 되거나 하는 그룹의 "엄마같은" 존재, 주위의 평은 「정이 깊고, 무엇이든 직접 받아들이는 노력쟁이」 비쥬얼계 밴드를 방불케하는 쿨한 인상이지만 표정은 정반대. 굉장히 잘 떠들고, 친밀하고 소프트한 모습이었습니다. 노래는 메인 파트를 담당. 1월의 싱글에는 작사작곡한 발라드 『忘れないで』가 수록되어 크리에이터로써의 모습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티스트성을 내보이기 시작한 09년의 동방신기에 있어서 키맨(key man)이 될듯하다.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곡이라는 건, 잘부르기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들은 일본에서 느끼게 되었던거같아요. 처음에는 곡의 분위기에 맞춰서 감정을 넣어 부르기는 했지만 언어의 이해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표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2년정도 되었을때, 우리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울어주는 분들 처음으로 보고 「아아, 겨우(일본인에게) 전해졌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기뻤어요. 솔직히 말하면 좌절할뻔 하기도 했어요. 06년 연말에 한국에서 음악상을 전부 받고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는데 그 바로 직후에 일본에 돌아와서 했던 이벤트에서는 우리들을 알지못하는 사람들 뿐. 스테이지라는 곳도 단상도 없는 곳이었고 마이크도 유선이고 바로 전날, 나라 전체로부터 축하받았던 곡(『"O" 正 反 合』)을 부르고 있는데 「이렇게도 분위기가 살지 않는걸까」라고.. 너무나 큰 갭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괴로워서 「더 이상은 힘들지도..」라고 생각했어요. 4년 걸려서, 이제 겨우 시선을 우리에게 돌리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폭발할 때까지 해나갈겁니다. ~~~~~~~~~~~~~~~~~~~~~~~~~~~~~~~~~~~~~~~~~~~~~~~~~~~~~~ ![]() 창민 라이브를 점점 쌓아가는 것이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1988년 2월 18일 생 B형, 신장 186센티. 연예계에는 전혀 흥미 없이 공부만 하던 소년시절을 보냈다.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능숙도 No.1. 보컬로써는 고음파트를 담당. 맴버중에서도 가장 높은 키의 음을 낸다. 고음에서 샤우트하는 씬은 보여줄만한 모습 중 하나. 스탭평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캐릭터를 알게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즐거움」 최연소이면서, 언제나 전체를 바라보고, 침착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똑부러진 동생". 일본어 습득도는 누구보다도 높아서 맴버의 토크를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말수가 적기때문에 "끝맺음"이 있다. 연상의 맴버들에게 날카롭게 파고드는 시크한 토크는 라이브 MC의 명물. 바로 뒤에, "동방신기를 맛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은 이 사람일지도 모른다. 일본에 막 왔을때는 한국과는 달리, 거리를 걸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자유로움이 기분좋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곧 쓸쓸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세 사랑받는 가수로써 활동할 수 있는데, 「일부러 일본까지 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니...」라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었죠 한국과 일본은 음악성도 프로모션의 방법도 전혀 달라요.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는 작품을 내고나서 프로모션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나오기전에 하잖아요(웃음)? 어쨌든 여러가지 갭이 있어서 혼란스러운 것들뿐이었죠. 그래도 긍정적으로 될 수 있었던건, 라이브를 할때마다 관객분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인거같아요. 「우리들이 하고 잇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야, 한발한발 나가고 있는거야」라고 실감하면서 해왔어요. 그게 없었다면 잘못된 생각했을 지도 모르고, 지금과 같은 우리는 될 수 없었을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온 인기인」이 아닌 「신인 동방신기」로서, 라이브 하우스부터, 홀, 아리나로 해올 수 있었던건 정말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 윤호 4년을 지낸 일본은 더이상 「다른 나라」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1986년 2월 6일생 A형, 신장 184센티. 음악방송을 시작으로 드라마나 버라이어티도 제대로 체크하고 있는 공부쟁이.스탭의 평은 「동방신기라는 그룹을 가장 사랑하는 남자」.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의 예명 「유노」로 불려지고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 전부, 스스로 말하길 「처음 일본에 왔을때는 맛이 진하게 느껴져서 입에 맞지 않았지만, 지금은 습관이되었어요」 가장 연장자인 23세로 리더를 맡고있다. 노래에서는 저음파트와 랩을 담당. 맴버의 역할, 그룹의 각자 맡고있는 포지션의 과제 등, 어떤 질문을 던져도 대답에 망설임이 없는것이 인상적이다. 이국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맴버들과 메니져와의 조정 역할을 솔선하여 맡고있는 아버지같은 존재로 그룹의 힘을 위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일본에 간다라고 들었을 때, 놀라긴 했지만 자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예요. 처음 2년은 자신만만했죠(웃음).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3년째가 되었을 때는 자신감을 잃어버렸어요. 아무리 「실력이 있는 그룹」이라는 말을 들어도, 문화적으로 거리가 있기때문에 전부 통하지 않죠. 일본에서 평가받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힘들다는 걸 알고 여러가지로 생각했던 것도 있었어요. 그 때, 우리의 기분을 바꾼것은 「동방신기의 노래가 좋다고 마음속 깊은곳으로부터 말해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괜찮아」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될 때 즈음부터 팬들이 늘어났어요. 그중에서도 07년의 무도관 마지막날은, 그때까지 해왔던 여러가지 일들이 떠올라서 맴버들도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감정을 넣는 방법또한 점점 능숙해져서 최근에는 그것이 노래에 나오고 있는거같아요. 일본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나라예요. 최근에는 「오랫동안 머물었기 때문에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4년이나 거점으로 삼아 활동해온, 「다른 나라」라고는 이제 생각할 수 없죠.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를 좀더 알아주실 수 있도록, 사랑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해나갈 것입니다. ~~~~~~~~~~~~~~~~~~~~~~~~~~~~~~~~~~~~~~~~~~~~~~~~~~~~~~ ㅜㅜ 읽으면서 쵸큼 마음이 짠해지네요..T_T 스마스마같은 방송을 다섯이 함께 하고싶다는 유천이의 꿈..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동경 The박유천 ( http://www.parkyuchun.kr ) ※ 임의대로 변형하거나 출처를 바꿔 업로드하는 것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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